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1세 (문단 편집) ==== 예루살렘? 이집트? ==== 군사 하층부에 속한 리처드 왕의 편력기의 저자에 따르면, 리처드는 [[예루살렘]] 공격에 대해 물 공급이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했다. [[살라딘]]이 우물에 독을 풀었으므로 십자군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릴레이식으로 운반해온 물을 말에게 먹여야 한다, 게다가 기병대의 반은 물을 공급받고 있을 때 반만이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리처드는 예루살렘 공성전 대신에 [[이집트]] 원정을 제의했다. 이에 십자군은 투표를 하자고 했다. 300명의 대배심원이 선정되었고, 그중에서 열 두명이 선발된 후 거기서 다시 세 명이 뽑혔다. 이 세 명의 결정을 최종 결정으로 정하자는 데 다들 동의했다. 세 명 모두 이집트 원정을 선택했다. 프랑스군은 최종 결정에 따르기도 약속해놓고도 즉각 약속을 깨뜨렸다. 예루살렘을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부르고뉴 공은 프랑스인은 아무도 이집트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선언했다. 그러자 리처드는 이집트 원정에 대해 설명했다. 나일강 원정은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순례자들'의 목적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층부의 설명은 다르다. 잉글랜드 왕실의 성직자는 리처드가 예루살렘을 공격하기를 원했지만 부르고뉴 공이 프랑스 왕을 생각해서 그럴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단언한다. 티레의 기욤의 연속물도 부르고뉴 공을 비난했다. 잉글랜드 왕이 이대로 예루살렘을 정복하면 도중에 귀국한 프랑스 왕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기에 공격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13세기에 [[루이 9세]]의 최측근도 부르고뉴 공이 리처드가 예루살렘 공성전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짤막하게 비난했다. 코제샬의 랄프는 부르고뉴 공, [[성전 기사단]]의 단원들과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왕을 위해서 리처드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을 막았던 것을 비난했지만 결론적으로 리처드에게 책임이 있었음을 암시했고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예루살렘 앞에서 십자군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베이트누바에서 해안 지역인 아크레까지 물러났다. 살라딘의 첩자들은 리처드가 아크레로 물러난 뒤 체면을 세우기 위해 베이루트 공성전에 나설지도 모르며, 그 다음에는 잉글랜드로 배를 띄울 것이라고 전했다. 살라딘은 여전히 최대의 숙적을 상대로 머리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어디로 나아갈지를 정했다. 아무도 그의 다음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